익산성지-사적지보기
본원실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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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총부 건설 당시인 원기 9년 (1924) 9월에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다. 11월 경에 완공하여 불법연구회의 첫 사무소를 설치하고 서중안 회장의 글씨로 [불법연구회(佛法硏究會)]란 이름을 기둥에 걸어 처음으로 세상에 공포하였다. 이 최초의 회관을 [도치원(道治院)]이라 칭했는데 대종사가 도치고개의 도치(盜治)란 이름을 고쳐 도치(道治)라 하였다.
이 도치에 세워진 신축 회관을 도치원(道治院)이라 하여 어둡고 미망한 과거 그 오명의 땅 이름에 다시 새로이 얼을 불어 넣어 바른 도로써 다스리겠다는 포부를 이 건물 명에 부여했던 것이다.
이 건물에는 방이 셋 있었는데 서아실은 대종사가 사용하는 [조실]이라 하였으며, 동아실은 팔산 등 5, 6명이 객실과 겸하여 사용하였다.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방은 교감실로 사용하여 정산종사가 기거하였다.
이곳에서 엿을 만들었으며 엿 목판을 잃었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4간 겹집이었으나 동아실을 들여서 6간 겹집이 되었다. 원기 12년 경에 금강원을 지어 그곳으로 조실을 옮겼으며 원기 17년(1932) 8월에 앞벽을 트고 유리 창문을 달았다.
그 후 사용하면서 북쪽에 부엌간을 중축하고, 건물 좌우의 uFFFDE마루가 다소 변경되었으며 앞쪽 마루에 출입미서기문을 달았었다. 그러나 복원하면서 부엌간은 없애고, 본원실 건축 당시 부엌, 반청으로 쓰였던 곳도 방으로 하였으며 앞쪽마루도 폭을 4자로 넓혔다. 그리고 좌우 북쪽에 uFFFDE마루를 달았다. 기둥, 보, 서까래 등 주요 구조체는 외송을 증기 건조하여 원래 목구조형태를 실측 그대로 맞추었다.
본래 초가로 계획하였던 지붕은 유지관리를 고려하여 시멘트 기와를 얹었다. 또한, 엿방과 본원실의 관리를 위하여 17평 정도의 시멘트 벽돌 조적조 관리등을 본원실의 서쪽에 신축하였다.
이 도치에 세워진 신축 회관을 도치원(道治院)이라 하여 어둡고 미망한 과거 그 오명의 땅 이름에 다시 새로이 얼을 불어 넣어 바른 도로써 다스리겠다는 포부를 이 건물 명에 부여했던 것이다.
이 건물에는 방이 셋 있었는데 서아실은 대종사가 사용하는 [조실]이라 하였으며, 동아실은 팔산 등 5, 6명이 객실과 겸하여 사용하였다. 그 사이에 있는 조그마한 방은 교감실로 사용하여 정산종사가 기거하였다.
이곳에서 엿을 만들었으며 엿 목판을 잃었던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4간 겹집이었으나 동아실을 들여서 6간 겹집이 되었다. 원기 12년 경에 금강원을 지어 그곳으로 조실을 옮겼으며 원기 17년(1932) 8월에 앞벽을 트고 유리 창문을 달았다.
그 후 사용하면서 북쪽에 부엌간을 중축하고, 건물 좌우의 uFFFDE마루가 다소 변경되었으며 앞쪽 마루에 출입미서기문을 달았었다. 그러나 복원하면서 부엌간은 없애고, 본원실 건축 당시 부엌, 반청으로 쓰였던 곳도 방으로 하였으며 앞쪽마루도 폭을 4자로 넓혔다. 그리고 좌우 북쪽에 uFFFDE마루를 달았다. 기둥, 보, 서까래 등 주요 구조체는 외송을 증기 건조하여 원래 목구조형태를 실측 그대로 맞추었다.
본래 초가로 계획하였던 지붕은 유지관리를 고려하여 시멘트 기와를 얹었다. 또한, 엿방과 본원실의 관리를 위하여 17평 정도의 시멘트 벽돌 조적조 관리등을 본원실의 서쪽에 신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