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지-사적지보기
세탁부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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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원기 9년(1924년) 9월 총부 건설 당시 본원실(일명 도치원)과 함께 최초로 지어진 집이다. 건립 당시 [ㄱ]자형으로 5간 초가 홑집이나 뒤에 함석을 올리었다. 총부 건립 당시 간고한 생활의 방편으로 엿장사를 하였는데 이 집에서 엿 곱는 일을 하여 [엿집]이라 하였으며 곡주형집이라 [꼭두마리집]이라고도 했다.
원기 10년(1925년)6월 엿방은 페하면서 식당과 사무실 그리고 여자 숙소를 겸하여 사용하였고 후에 본원실의 조실(서아실)이 금강원으로 옮겨졌으므로 사무실이 본원실로 옮겨졌다.
원기 16년경 다시 사무실(구정원)을 신축하여 옮김에 따라 [부인선원(여자선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담장을 신설 개수하였다. 그후 여자 숙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원기 58년 중앙 선원이 발족됨에 총부내 세탁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통칭 [세탁부]라고 불렸다.
본래 엿방 건물은 18.5평정도로 10간 이었다. 그러나 60여 년의 세월 동안 건물이 퇴락하여 보수가 불가피했고 인접한 국도의 확장으로 세탁부로 쓰이던 엿방 건물은 본래보다 3간이 헐려 훼손이 심하였고, 대종사가 대중과 같이 거처하던 당시와 같이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하지만 인접 국도가 확장되어 원래 위치에 10간의 건물을 복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8간으로 줄이게 되었으며, 담장과 일정한 간격을 두게 되어 한편은 건물 폭이 좁혀지기도 하였다.
원기 70년 6월 요양원 신축부지의 소나무를 벌목 가공하여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하고, 일부는 증기건조목을 사용하였으며 가능한대로 원래 목구조 형태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외벽은 흙벽에 백화를 바르고 실내는 단열재, 합판 위에 벽지로 마감하였으며, 지붕은 함석을 이어 페인트칠을 하였다.
원기 10년(1925년)6월 엿방은 페하면서 식당과 사무실 그리고 여자 숙소를 겸하여 사용하였고 후에 본원실의 조실(서아실)이 금강원으로 옮겨졌으므로 사무실이 본원실로 옮겨졌다.
원기 16년경 다시 사무실(구정원)을 신축하여 옮김에 따라 [부인선원(여자선방)]으로 사용하기 위해 담장을 신설 개수하였다. 그후 여자 숙소로 사용되어 오다가 원기 58년 중앙 선원이 발족됨에 총부내 세탁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통칭 [세탁부]라고 불렸다.
본래 엿방 건물은 18.5평정도로 10간 이었다. 그러나 60여 년의 세월 동안 건물이 퇴락하여 보수가 불가피했고 인접한 국도의 확장으로 세탁부로 쓰이던 엿방 건물은 본래보다 3간이 헐려 훼손이 심하였고, 대종사가 대중과 같이 거처하던 당시와 같이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였다.
하지만 인접 국도가 확장되어 원래 위치에 10간의 건물을 복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8간으로 줄이게 되었으며, 담장과 일정한 간격을 두게 되어 한편은 건물 폭이 좁혀지기도 하였다.
원기 70년 6월 요양원 신축부지의 소나무를 벌목 가공하여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하고, 일부는 증기건조목을 사용하였으며 가능한대로 원래 목구조 형태에 충실하고자 하였다. 외벽은 흙벽에 백화를 바르고 실내는 단열재, 합판 위에 벽지로 마감하였으며, 지붕은 함석을 이어 페인트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