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지-사적지보기
구조실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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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대종사가 봉래정사에서 중앙총부로 옮긴 후 처음으로 정해진 일정한 곳이다. 원기 12년(1927년) 4월 7일 제 5회 평의원회에서 건립하기로 결정한 후 제 1회 원기 13년(1928년) 6월에 준공된 건물이다.
원기 17년에 수리하여 앞이 한옥이였던 것을 창문으로 바꾸었다. 19년 후원에 화장실과 목욕실을 신설하였다. 방이 4개로 칸막이를 임의로 뜯어서 예회를 보거나 기념례를 지내는 등 다목적용으로 평시에는 칸을 막아 낮에는 사무실로 밤에는 숙소로 사용하였다. 이 집을 제 1회 기념 총회가 열리는 꽃피는 봄날에 지어졌다고 해서 옥호를 [영춘원]이라 하였다.
원기 12년(1927년)6월 22일 준공된 조실은 [금강원]이라 이름하게 되자 영춘원을 동격으로 원(院)이라 할 수 없어 격을 낮추어 헌(軒)이라 하여 [영춘헌]이라 일컬어진 집이다.
그 후 대종사 열반 몇 해 전(원기 20년경)부터 원기 28년(1943년) 6월 1일 열반 직전까지 이 집에서 계속 기거함에 따라 [조실]이라는 이름이 계속되었으며 대종사 뒤를 이은 후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가 이 건물에서 기거하셨다. 이 구조실은 6칸 겹집으로 구조가 본원실과 거의 동일하며 현재에는 [종법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종법실이 반백년기념사업으로 새로이 건축됨으로 인해서 [교정원장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대종사 영정을 모셔놓고 일반적인 사용은 않고 있다. 원기 83년엔 대산상사께서 이곳에서 열반상을 나투셔서 더욱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원기 17년(1932년)개축하고 원기 60년 (1975년) 12월에 보수하였다. 건물 앞에는 당시 대종사가 손수 심은 나무들과 말씀을 받들어 만들어진 정원이 있다.
원기 17년에 수리하여 앞이 한옥이였던 것을 창문으로 바꾸었다. 19년 후원에 화장실과 목욕실을 신설하였다. 방이 4개로 칸막이를 임의로 뜯어서 예회를 보거나 기념례를 지내는 등 다목적용으로 평시에는 칸을 막아 낮에는 사무실로 밤에는 숙소로 사용하였다. 이 집을 제 1회 기념 총회가 열리는 꽃피는 봄날에 지어졌다고 해서 옥호를 [영춘원]이라 하였다.
원기 12년(1927년)6월 22일 준공된 조실은 [금강원]이라 이름하게 되자 영춘원을 동격으로 원(院)이라 할 수 없어 격을 낮추어 헌(軒)이라 하여 [영춘헌]이라 일컬어진 집이다.
그 후 대종사 열반 몇 해 전(원기 20년경)부터 원기 28년(1943년) 6월 1일 열반 직전까지 이 집에서 계속 기거함에 따라 [조실]이라는 이름이 계속되었으며 대종사 뒤를 이은 후대 종법사인 정산종사가 이 건물에서 기거하셨다. 이 구조실은 6칸 겹집으로 구조가 본원실과 거의 동일하며 현재에는 [종법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종법실이 반백년기념사업으로 새로이 건축됨으로 인해서 [교정원장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대종사 영정을 모셔놓고 일반적인 사용은 않고 있다. 원기 83년엔 대산상사께서 이곳에서 열반상을 나투셔서 더욱 의미를 더해가고 있다.
원기 17년(1932년)개축하고 원기 60년 (1975년) 12월에 보수하였다. 건물 앞에는 당시 대종사가 손수 심은 나무들과 말씀을 받들어 만들어진 정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