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지-사적지보기
구정원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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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원기 20년 3월경 신영기의 개인 주택으로 건축되었으나 이듬해 이리 방면으로 이사하면서 총부에 희사하였다. 이곳을 개수하여 원기 21년 5월에 교정원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겼다. 교정원 사무실을 원기 49년 8월 다시 신축하여 (식당) 옮기고 남자 숙소로 사용하다가 반백년 기념사업 때 사업회 사무실로 사용했다. 현재는 남자 교무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구정원]이라는 이름은 제일 처음 교정원 사무실로 사용했다 하여 [옛날 교정원]이라 했고 그 약칭으로 부른 것이다. 구조는 4간 겹집으로 현관이 있으며 별채로 2간이 있었는데 도서관과 창고로 사용하였었다.
현존하는 당시 총부의 사가는 청하원, 정신원, 구정원이며 헐리고 없는 사가는 전음광, 서중안, 이청춘 등의 사가이다. 청하원은 구타원 이공주의 사가였으며. 정신원은 팔타원 황정신행의 사가였다. 총부에 처음 들어온 사가는 전음광 일가의 사가였다. 2년 뒤 서중안 일가가 이사를 하였고, 이어 이청춘이 이사를 하였다. 이들 사가는 꼭두 마리집 아래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이청춘, 전음광, 서중안의 순으로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시의 사가 뿐만이 아닌 원불교의 역사적 건물은 대부분 총부 교무의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총부성지를 순례하는 순례객은 다만 건물의 외형과 그 건물이 지니는 의미를 건물 주위에 소개되는 안내판에만 의지하고 있다. 성지의 신앙적 성역화와 역사적 의미의 부각을 위해서는 충분히 제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진다. 예를 들어 구정원의 경우 당시 사무실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원불교 역사의 일단을 순례객들에게 보여주며 특히, 청하원과 정신원 및 구정원, 정화정사, 구조실, 금강원, 공회당, 본원실 등의 구역은 원불교 역사의 장으로 조성하여 후인들에게 원불교의 형성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구정원]이라는 이름은 제일 처음 교정원 사무실로 사용했다 하여 [옛날 교정원]이라 했고 그 약칭으로 부른 것이다. 구조는 4간 겹집으로 현관이 있으며 별채로 2간이 있었는데 도서관과 창고로 사용하였었다.
현존하는 당시 총부의 사가는 청하원, 정신원, 구정원이며 헐리고 없는 사가는 전음광, 서중안, 이청춘 등의 사가이다. 청하원은 구타원 이공주의 사가였으며. 정신원은 팔타원 황정신행의 사가였다. 총부에 처음 들어온 사가는 전음광 일가의 사가였다. 2년 뒤 서중안 일가가 이사를 하였고, 이어 이청춘이 이사를 하였다. 이들 사가는 꼭두 마리집 아래로부터 시작하여 차례대로 이청춘, 전음광, 서중안의 순으로 있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시의 사가 뿐만이 아닌 원불교의 역사적 건물은 대부분 총부 교무의 숙소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총부성지를 순례하는 순례객은 다만 건물의 외형과 그 건물이 지니는 의미를 건물 주위에 소개되는 안내판에만 의지하고 있다. 성지의 신앙적 성역화와 역사적 의미의 부각을 위해서는 충분히 제고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진다. 예를 들어 구정원의 경우 당시 사무실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원불교 역사의 일단을 순례객들에게 보여주며 특히, 청하원과 정신원 및 구정원, 정화정사, 구조실, 금강원, 공회당, 본원실 등의 구역은 원불교 역사의 장으로 조성하여 후인들에게 원불교의 형성과정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