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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회당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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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원기 14년 2월 1일 임시위원회에서 양잠실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그로 인해 당시 농무원측과 서무부가 합자하여 중앙총부 건설 이후 조실 다음으로 신축된 건물이며 대종사가 직접 감역하셨다. 양잠실로 겸하여 사용하려 하였으나 선(禪)을 하는 장소로만 사용하였다. 양잠실로 활용하지 못한 이유는 봄부터 양잠실로 쓸 경우 봄누에 말기와 하선이 시작될 무렵, 그리고 가을누에의 초기와 하선이 끝나는 시기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이후 공회당 맞은 편에 목조 초가집을 새로 짓고 신 양잠실로 입주할 수 밖에 없었다.당시 명칭은 [공회당]이라 하였고 종전에 본원실, 금강원, 구조실등에서 행하여진 선이나 예회도 이곳으로 옮겨져 행해졌으며 염불, 회화, 강연, 시국담화 등 원기 20년 대각전이 건축되기 이전까지 모든 행사를 이 곳에서 행하게 되었다. 또 하나는 이 집은 원기 31년 개원된 유일학림(唯一學林·원광대학교 전신) 의 강의가 이루어진 건물로 오늘의 원광대학교가 정식 인가되어 총부 옆에 터를 잡고 옮기자 남자 숙소로 사용되었다. 원기 39년 중앙선원이 개원될 때 이곳에서 시작하였고, 원기 48년 중앙선원이 발전하고 해체된 후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 남기숙사로 사용되었다. 원기 57년 반백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건물 서쪽 일부가 헐리워졌다. 집의 구조는 중앙에 남쪽으로 현관이 있고 다락 밑에는 지하실이 있는데 이곳은 양잠을 할 때 비가 오면 이곳에 뽕잎을 저장하였다. 목조 7간 겹집으로 지붕은 함석이다. 원기 63년부터 총부 선도량화를 추진하기 위해서 상주선원을 개설함으로 인해 [중앙선원]이라 불리던 공회당은 [상주선원]으로 개칭되었다. 상주선원은 중앙훈련원과 별도로 재가 교도들에게 교리훈련을 시키는 훈련기관이었다. 상주선원 사무실(서쪽방)과 강의실 (동쪽방)로 사용되고 있으며 동편 두 개의 방은 상주선원 남자선원객 숙소로 사용되었였다. 현재 공회당은 종법사의 교도 대중 접견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아침에는 원불교학과생들의 좌선장소로, 저녁에는 총부 간사들의 일기 염불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