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성지-사적지보기
영산원
관련인물 | 관련인물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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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영광지부(영산출장소)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원기 8년 영산선원(영산대학의 전신 기지를 건설하면서 현재의 영산출장소 자리에 새로운 터를 마련하고 구간도실 건물을 옮겨 짓고 영산원이라 하였다. 이 집은 구간도실의 집을 뜯어 옮겨 일부 보수와 개조를 하여 영산원(靈山院이라 이름 붙었다.
원기 9년(1924년 익산에 총부를 건설한 뒤 영광지부(영산출장소를 설치하고 방언답을 관리하고 영산지역의 교화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원기 12년부터는 영산학원을 개설하여 교단의 초기 인재를 양성하여 왔다.<사진 1>은 영산원에서 법을 설하실제 중앙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여학생이, 좌측에는 남학생이 있었다. 현재 영산원의 좌측에 학원실이 있는 것처럼 우측에도 [ㄱ]자 모양의 식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 또한 [불법연구회영광지부]라는 간판이 있는 부분을 보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는 초가가 아닌 기와를 올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정문에 문을 달아 둔 것을 볼 수 있다. 장마 때 자꾸 비가 세니까 기와를 올렸으며 이때 현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특정 이유로 인하여 사적지 모습의 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있게되는 계기가 된다.
<사진 3>은 기와를 얹고 유리창을 달은 모습이다. 그러다가 1986년 8월 공중을 얻어 당시 모습으로 다시 개수, 개량해 만들었고 현관의 모습도 없이 마루로 고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어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처음에 소개된 사진과 같다. 지금의 [영산원] 모습은 구간도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그 이전의 모습을 유추해 본다면 과연 현재 구간도실의 형태가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금 가지게 된다.
원기 9년(1924년 익산에 총부를 건설한 뒤 영광지부(영산출장소를 설치하고 방언답을 관리하고 영산지역의 교화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그러던 중 원기 12년부터는 영산학원을 개설하여 교단의 초기 인재를 양성하여 왔다.<사진 1>은 영산원에서 법을 설하실제 중앙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여학생이, 좌측에는 남학생이 있었다. 현재 영산원의 좌측에 학원실이 있는 것처럼 우측에도 [ㄱ]자 모양의 식당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없다. 또한 [불법연구회영광지부]라는 간판이 있는 부분을 보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2>는 초가가 아닌 기와를 올린 모습을 하고 있으며 정문에 문을 달아 둔 것을 볼 수 있다. 장마 때 자꾸 비가 세니까 기와를 올렸으며 이때 현관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특정 이유로 인하여 사적지 모습의 변화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가 있게되는 계기가 된다.
<사진 3>은 기와를 얹고 유리창을 달은 모습이다. 그러다가 1986년 8월 공중을 얻어 당시 모습으로 다시 개수, 개량해 만들었고 현관의 모습도 없이 마루로 고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되어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처음에 소개된 사진과 같다. 지금의 [영산원] 모습은 구간도실의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하지만 그 이전의 모습을 유추해 본다면 과연 현재 구간도실의 형태가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을 다시금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