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성지-사적지보기
송대
관련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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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송대는 중앙총부 북편 소나무 숲속에서 지어진 집으로 옆에는 대종사 성탑과 성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구전에 의하며 원기 26년 가을에 대종사가 휴양과 집필을 위하여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3칸 겹집으로 당시 조실이나 공회당(상주선원)에서 멀리 북쪽으로 떨어진 소나무 숲사이에 세워졌다. 한때는 주요 환자들의 간병실 역할도 하였다.
원기 34년 2월 정산종사의 유시를 받아 교단 기관지인 월간 원광(圓光)이 창간된 산실로 이곳에 원광사(圓光社) 현판을 걸기도 하였다. 정산종사는 일제 말기에 자진 휴간된 <회보>를 계승할 교단 기관지 발행을 염원하고 시봉금 약간을 하사하면서 유일학림 졸업생 이은석, 이공전에게 원광지 창간을 독려하였다.
정산종사는 34년 7월 원광 창간호에 [일원지광 편조시방(一圓之光 遍照十方)]이라는 휘호를 내렸다. 이어서 무엇이나 진실한 일은 아무리 없애려 해도 필경은 있어지는 것이요, 거짓된 일은 아무리 있으려 하여도 필경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라고 교단의 영원한 장래와 아울러 원광도 영원하도록 축원하여 주었다.
원기 34년 2월 정산종사의 유시를 받아 교단 기관지인 월간 원광(圓光)이 창간된 산실로 이곳에 원광사(圓光社) 현판을 걸기도 하였다. 정산종사는 일제 말기에 자진 휴간된 <회보>를 계승할 교단 기관지 발행을 염원하고 시봉금 약간을 하사하면서 유일학림 졸업생 이은석, 이공전에게 원광지 창간을 독려하였다.
정산종사는 34년 7월 원광 창간호에 [일원지광 편조시방(一圓之光 遍照十方)]이라는 휘호를 내렸다. 이어서 무엇이나 진실한 일은 아무리 없애려 해도 필경은 있어지는 것이요, 거짓된 일은 아무리 있으려 하여도 필경은 없어지고 마는 것이다"라고 교단의 영원한 장래와 아울러 원광도 영원하도록 축원하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