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성지-사적지보기
제명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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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
지정년도 |
상세설명 DESCRIPTION
제명바위는 옥녀봉 아래에 있는 바위로써 대종사와 8인 제자들의 정관평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칠산 종사의 제언으로 3m정도의 높이 자연석 바위에 석회를 판처럼 바르고 간척공사 기간과 실시원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다.
가로 90cm, 세로 45cm의 판에 김성섭(팔산 김광선의 글씨로 오른쪽에서부터 세로 글씨로 음각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靈光 白岫 吉龍 干瀉地 兩處 組合員 / 朴重彬 / 李仁明 / 金成燮 / 劉成國 / 吳在謙 / 金聖久 / 李載 / 朴漢碩 / 大正七年四月四日始 / 大正八年三月二十日終]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제명바위가 세워진 시기를 놓고 이견이 있으니, 제명바위는 방언공사가 끝나고 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견이다. 앞의 내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사는 끝났다 하여도 여러 문제점이 있었고 조합의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 당시에는 석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정관평 수문을 만들고 남은 시멘트를 이용해 만들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럴듯하게 이해가 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의심점이 따른다. 즉 원기 6년 이후라 할 것 같으면 이미 법명을 사용하였을 것인데 법명이 아닌 속명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또다른 내용은 방언공사가 마쳐진 후 바로 이어졌다는 의견이다. 즉 제자들의 이름이 모두 속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까닭은 방언공사 마치고 난 뒤 법인성사가 이루어진 뒤에야 대종사께서 법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의견이 있으나 필자는 전자에 뜻이 기울어진다.
가로 90cm, 세로 45cm의 판에 김성섭(팔산 김광선의 글씨로 오른쪽에서부터 세로 글씨로 음각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靈光 白岫 吉龍 干瀉地 兩處 組合員 / 朴重彬 / 李仁明 / 金成燮 / 劉成國 / 吳在謙 / 金聖久 / 李載 / 朴漢碩 / 大正七年四月四日始 / 大正八年三月二十日終]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제명바위가 세워진 시기를 놓고 이견이 있으니, 제명바위는 방언공사가 끝나고 바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견이다. 앞의 내용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공사는 끝났다 하여도 여러 문제점이 있었고 조합의 형편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 당시에는 석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정관평 수문을 만들고 남은 시멘트를 이용해 만들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럴듯하게 이해가 되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의심점이 따른다. 즉 원기 6년 이후라 할 것 같으면 이미 법명을 사용하였을 것인데 법명이 아닌 속명으로 기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또다른 내용은 방언공사가 마쳐진 후 바로 이어졌다는 의견이다. 즉 제자들의 이름이 모두 속명으로 기록되어 있는 까닭은 방언공사 마치고 난 뒤 법인성사가 이루어진 뒤에야 대종사께서 법명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 두가지 의견이 있으나 필자는 전자에 뜻이 기울어진다.